쫙벌녀 ┭ 강조했다
쫙벌녀 하나뿐인 딸의 행복에는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그저 이 결혼을 통해 들어올 회사의 유익과, 눈엣 가시 같은 전처의 딸과 같이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이던 그들은 제후의 입장에서도 좋아질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란아.
나중에 다른 세상에 태어나면 그 때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곁에 있고 싶어요.
아란은 오빠도 포함해서요, 란 말은 하지 못했다.
사람 무안하게 톡톡 쏘긴 하지만 친오빠 같은 다정함으로 그녀를 지켜주는 사람 제후의 사랑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이렇게 의지할 가슴과 어깨가 있는 것으로 감사하자고 늘 심장을 달래는 그녀였다.
나를 귀찮아하지 않는 사람들 곁에서요.
아란의 한숨을 제후는 키스로 막았다.
http://naveryo.com 촉촉하고 아찔한 입술의 감촉을 겉에서만 느끼기가 아쉬워 그녀의 입 안으로 혀를 넣고는 뜨거운 향기를 나눠 삼켰다.
아란이 제후의 목에 팔을 걸며 몸을 붙였다.
그의 손에 길들여진 몸은 키스 이상의 무엇을 기대하며 떨고 있었다.
제후의 손이 아란의 등 뒤로 가 실크 원피스의 지퍼를 내렸다.
가냘픈 허리를 따라 원피스 가 아란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고 송두리째 흔들리는 이성을 제어하지 못하고 제후도 옷을 벗어던졌다.
여행 얘기만 하고 내려갈 참이었는데 불이 붙자 멈출 수가 없었다.
여느 때처럼 아란은 순결한 나신으로 제후를 받아들였다.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거 친 움직임과 손길을 힘겨워하면서도 순종했다.
제후는 녹초가 되도록 아란을 안고 또 안았다.
미친 사람처럼 아란의 몸속에서 권 제후의 소유를 확인했다.
그는 어느 샌가 그녀가 아니면 쾌락을 느낄 수 없는 남자로 길들여져 있었다.
애 데리고 올라가서 뭘 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렸니? 손님들 오시는데 나와서 좀 맞지 않 고.
누르면 붉은 물이 떨어질 것 같은 아란의 뺨과 제후의 옷자락을 쥐며 등 뒤로 숨는 그녀의 행동이 위에서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권 회장 내외는 짐짓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손님들이야 할아버지 만나러 왔지, 저 보러 왔어요? 사돈어른들이 오셨단다.
인사는 드려야 하지 않겠니? 제후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새어머니와 대면해야한다는 말에 핏기가 가시는 아란의 안색 을 보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곳에서 싫다는 말을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디 계시는데요? 옷을 쥔 아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제후의 등으로 바짝 몸을 붙였다.
희미하게 떨 리는 작은 어깨가 안쓰러워서 제후는 견딜 수 없었다.
권 회장이 손가락으로 귀한 손님이 아니면 모시지 않는 방을 가리켰다.
다른 손님들과 따 로 모셨다.
매무새 가다듬고 들어가서 인사 여쭙고 나오거라.
제후도 피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평소에도 잘 지내냐는 전화 한 통 없는 부모 같지도 않 은 사람들과 아란을 대면시키는 이 상황을 그녀에게서 가려주고 싶었다.
아란아.
제후가 머뭇거리자 권 회장의 눈이 아란을 향했다.
어서 들어가서 인사 드리거라.
결혼하고 나선 처음인데 무척 보고 싶었을 것 아니냐.
제후는 사정도 모르고 아란을 몰아다 붙이는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렇다고 보는 눈, 듣는 귀 많은 이 자리에서 사실을 얘기할 수도, 경거망동을 저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누나! 그 때 어디선가 남자아이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아란의 다리에 매달려 얼굴을 비비댔다.
아란이 몸을 굽히더니 웃으면서 아이를 안아 올렸다.
이제 다섯 살이나 됐을까 누가 보면 엄마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그녀를 빼닮은 꼬마였다.
http://cye.daumkor.co.kr 누구야? 내 동생 재영이요.
결혼식 때 안 봤었어요? 하지만 아란이 넌외동딸이잖아, 라고 말하려다가 제후는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이 아 이는 새어머니에게서 난 의붓동생일 것이다.
누나 이 아저씨 누구야? 아저씨? 제후는 맹랑한 꼬마의 발언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란이 웃으며 동생의 말을 정정했다.
재영아, 아저씨가 아니라 매형이야.
누나랑 결혼한 사람.
누나 이 아저씨랑 결혼했어? 엄마랑 아빠처럼 같이 사는 거야? 아빠라기보다는 차라리 할아버지가 낫겠다.
제후는 획, 팔짱을 끼며 아니꼽다는 표정을 지었 다.
그럼 아기는 어디 있어? 결혼하면 엄마 아빠처럼 아기도 낳는 거잖아.
재영이 동생 어디 있어? 덕분에 아란의 긴장이 덜어지긴 했지만 누나를 차지하고 있는 어린 처남이 마음에 들지 않 는 제후였다.
제후가 아란의 목에 목도리처럼 두르고 있는 작은 팔을 풀려는 찰나, 손님 방 문이 열리더 니 그녀의 부모님이 나왔다.
아이를 어르고 있던 아란이 새어머니를 보고는 동생을 거실바닥에 내려놓았다.
엄마한테 갈래, 재영아? 누나는 어디 가야 되거든.
웅웅, 싫어.
누나도 같이 집에 가.
응? 재영아, 이리 온.
저 낳아준 엄마가 부르는데도 재영은 누나에게만 매달려 징징거렸다.
제후가 발을 공중으로 동동대는 아이를 떼어다 엄마에게 안겨주었다.
고마워, 권 서방.
그리고 너도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니? 새어머니의 마지못한 눈길이 아란에게 닿았다.
염려했던 거와 달리 아란은 떨지도 않고 말 을 받았다.
걱정해주신 덕분에요.
아버지도 건강하시죠? 나야 늘 잘 있지.
이 사람이 잘 http://alr.me 챙겨주니까.
아내의 어깨를 안으며 다정스레 대답하는 아란의 아버지를 보면서 제후는 역겨움마저 일었 다.
당연히 그러시겠죠.
힘들게 재혼하셨는데 오죽 하시겠어요? 삐딱한 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란이 그러지 말라는 듯 제후의 팔을 잡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을 뿐 더러 제후도 그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너무 사이가 좋아서 딸이 어떻게 사는지는 궁금하시지도 않나 봐요.
저희 결혼한 지 두 달이 넘도록 전화 한 통도 안 하시고 말입니다.
저도 부러울 정도라니까요.
농담 속에 드러나는 가시.
은 사장 내외의 얼굴이 불쾌감으로 흐려지는 것을 보며 권 회장 이 나섰다.
제후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할아버진 아무 것도 모르면 가만히나 계세요, 소리가 이 사이에서 걸렸다가 목으로 넘어갔 다.
제후는 조롱기를 입가에 걸었다.
실례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없는 소리를 한 것도 아니고 뭘 잘못했는지 전 모르겠 는데요.
제후야! 마침내 권 회장의 입에서 큰 소리가 나왔지만 그렇다고 제후가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오히 려 건방진 눈동자 속에 두 사람을 가두어 노려볼 뿐이었다.
당신들도 깨달아야 돼.
없는 사람 취급 받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때늦은 사랑 놀음으로 무시당해 내쳐진 자식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당신들도 알아야 돼.
제후는 아란의 손을 잡았다.
그럼 천천히 놀다 가세요.
저희는 다른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하거든요.
얼굴 풀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고 비행기에 오르면서도 아란은 내내 불안한 얼굴이었다.
너도, 지금 내가 너무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죄송해서 그래요.
오빠도 괜히 저 때문에 은 아란.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던 제후가 무서운 얼굴로 아란을 돌아보았다.
말해두는 데 너하고는 상관없이 내가 한 말이야.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대하는 그 분들 태도에 내가 기분이 나빠서 한 마디 한 거라고.
알았어? 아란이 눈길을 돌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기분 잡치게 그런 얼굴도 하지 말고.
이래서야 둘이 여행 가는 기분도 안 나잖아.
미안해요.
안 그럴게요.
이러니 당하고만 살았지.
제후는 침을 꿀꺽 삼키고 http://bwin.accs.kr 화를 가라앉혔다.
은 아란, 너 여기서 조금만 나빠지면 안 되겠냐? 까짓 망신 한 번 준 거 가지고 마음 쓰 지 마.
그 사람들이 그런다고 해서 부끄러워하기나 할 거 같아? 사실은 아란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사실은 저도 속이 시원했어요.
오빠가 그 말 안 했으면 내가 했을지도 몰라요.
다만 오빠 가 할아버지 눈에 나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오빠 나쁘게 보면 어쩌나 그게 걱정됐어요.
제후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
거기 온 손님 중에 나 그렇고 그런 놈인 거 모르는 사람 없 어.
그래도 나 때문에 오빠 나쁘게 보이는 거 싫어요.
정말로요.
네 눈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기지 않는데 왜 네 눈엔 내가 안 보이는 걸까.
제후는 속 이 쓰렸다.
그만해라.
빼도 박도 못할 말 가지고 가타부타 떠드는 거, 머리 아파.
제후는 몸을 의자에 묻으면서 눈을 감았다.
그를 가만, 쳐다보는 아란의 시선과 이내 고개를 돌리는 나즈막한 한숨이 느껴졌지만 모른 척 했다.
기대하게 만들지 마.
네 착한 눈빛을 마주하는 게 얼마나 날 혼란스럽게 만드는 지 알아? 사랑은 느낄수록 괴로웠다.
낯설고 힘들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자 호텔에서 보낸 VIP 전용 리무진을 타고 호텔로 들어갔다.
우와~예쁘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의 객실에 짐을 풀자마자 아란은 곧장 발코니로 뛰어나갔다.
그러더니 인어공주가 되어 바다에 뛰어들기라도 할 것처럼 난간을 손으로 짚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여기 진짜 마음에 들어요.
돌아가면 할아버지께 감사하는 말씀 꼭 드려야겠어요.
할아버지의 생신을 위해 입었던 답답한 정장 셔츠의 단추를 풀면서 제후는 대답했다.
그러던지.
직접 마중을 나온 지배인의 말에 따르면 신혼부부에게 인기가 높은 방이라고 했다.
이틀을 머무는 데 190만원이고 사흘에 260만원을 호가하는 고급형의 허니문 패키지용 객실이란다.
얼른 옷 갈아입어.
바다 보고 싶다며.
조금만 더 보구요.
제후가 니트 셔츠에 청바지로 갈아입을 동안까지 아란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제후의 마 음속에 불쑥 짓궂은 장난기가 돌았다.
아쉬워하며 허리를 바로세우는 아란의 등에 제후의 가슴이 닿았다.
그만 보고 가자니까.
제후는 두 팔로 각각 아란의 어깨와 허리를 둘러 안으며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아니면, 아무 데도 나가지 말고 그냥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까? 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게 싫다.
넌 내가 마법을 풀어줄 때만 살아 숨을 쉬는 인형이었으면 좋겠다.
그그치만 아까 집에서두 거긴 거기고 호텔에서 하는 건 처음이잖아.
제후는 아란의 목을 가리고 있던 긴 머리를 헤치면서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물었다.
불그스 름한 입술자욱과 고른 치흔(齒痕)이 남았다.
게다가 우린 부부고어디에서도 거리낄 게 없어야 한다고.
아란의 귓불을 깨물며 제후가 물었다.
허리를 안았던 손이 내려가 스커트를 밀어올리고 매 끈한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http://ajjj.isuim.com 그녀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자어떻게 할까? 밖으로 나가서 멍청한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줄까, 아니면 이 곳에 서 갑자기 돌아선 아란이 제후의 목에 팔을 감으며 입술을 맞댔다.
등 뒤로 파닥이며 스커트를 들추는 바람만큼이나 그녀의 행동은 대담했다.
아란이 입술을 떼었다.
원해요.
해요.
한 음절이 숨어 나왔지만 제후는 그 말이 허락의 뜻임을 알 수 있었다.
요정들의 눈물처럼 수정이 되어 떨어질 듯 잔잔한 물기가 아란의 눈에 고인다.
아란아 그의 뺨을 쓸어내리는 손을 잡아 손바닥에 입을 맞추고 제후가 말했다.
나 겁쟁이야.
나 너 데리고 도망 온 거야.
밑도 끝도 없이 퍼 올리는 말이었다.
어둠에 깊이를 감춘 우물에서 처음 두레박으로 퍼 올 린 맑은 물이었다.
사실은 내가 오빠.
제후의 팔 안에서 아란의 허리가 휘어지며 다가갔다.
코끝이 부딪치는 거리에서 아란은 제 후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 말 꼭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면, 하고 나서 오빠 마음 상하게 할 말이라면 하지 마요.
사람들 떠나서 둘이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 아무 생각 하지 마요.
여행 왔으니까 좋은 기억만 만들어요.
아무도 끼워주지 말고 그냥 우리 생각만 하면서 지내요, 네? 그녀가 말하는‘우리’는 특별하게 들린다.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닌 우리.
그런데 그 우리 사이에 누가 끼어들면 어떻게 하지? 하나도 아닌 둘.
너를 좋아하는 사람, 네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내가 널 영원히 차지할 수 있는 걸 막아버리 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너 좋아하 바로 그 때 제후의 핸드폰이 주인을 찾았다.
제후는 긴장이 푹 수그러드는 걸 느끼면서 아 란의 허리를 감았던 팔을 풀고 거실로 들어갔다.
여보세요? 제후, 네 이 녀석! 할아버지셨다.
제후는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제가 잘못했어요.
이제 됐죠?! 제후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아예 핸드폰의 배터리를 뽑아 버렸다.
오빠아란은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그래.
돌아가면 틀림없이 배로 혼나겠지만 아무도 너한테 뭐라 안 할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아란이 고개를 저었다.
부부는 일심동체랬어요.
오빠가 잘못한 건 내가 잘못한 거고 난, 오빠가 할아버지한테 혼 나는 거 싫어요.
그래? 제후는 웃는 듯 마는 듯 입가를 찡그렸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그에 대해 ‘우리’를 강조하는 아란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나중에 할아버지가 부르시면 저도 데리고 가요.
같이 혼나줄게요.
같이 혼나줘? 어감이 재미있었다.
마지못한 미소는 진심이 되고 말았다.
제후가 아란의 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하긴.
할아버지 할머니는 너 예뻐하시니까 너 데리고 가면 야단은 덜 맞겠다.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닌 순수한 미소가 제후를 따라 아란의 얼굴에 고였다.
그저 바 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 웃고 있으면 온 세상이 빛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http://kwsc.net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아냐? 그건 다 권 제후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서 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먼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를 보고 승원과 미진이 했던 말이었다.
무표정한 얼굴을 녹여보고자 웬만한 미모를 갖춘 여자들이 줄줄이 덤벼들었지만 마음을 얻고 떠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했다.
떠난 사람이 여자가 먼저든 권 제후가 먼저든 그가 미련을 갖고 찾는 경우도 없다 했다.
포기해.
저 선배 맘 좀 뺏어보겠다고 설치다가 바보 된 애들 하나둘인 줄 아냐? 친구들의 만류에도 변함없던 절실한 외바라기에 하늘도 감동하셨는지 인연이 맺어졌고 심지 어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게까지 되었다.
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제후는 아란의 몸만은 좋아했다.
진짜 속을 내비치는 경우는 없었지만 그녀가 없으면 가끔 서운해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바라만 보고 말도 못 걸던 옛날에 비하면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을, 아란은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헤어지면? 나한테 싫증을 내고 계약을 끝내자고 말하면? 가슴에 싸한 통증이 찾아왔다.
아란은 작은 콧소리 섞인 한숨을 쉬며 제후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안겼다.
그리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시원한 향수냄새와 체취를 숨 속으로 담아 넣었다.
언젠가 그가 떠날 때 언젠가 혼자 남겨질 때,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며 견딜 수 있도록.
제주도로 밀월여행을 다녀온 다음부터 제후는 강의라든가

반드시 떨어져 있어야할 때를 빼 고는 아란을 옆에 붙이고 다녔다.
결혼을 빨리 해서 못해봤던 평범한 데이트도 했다.
강의가 비는 시간 틈틈이 전화를 하고 기다리고 만나고, 아란이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다녔다.
같이 술 마실 시간도 없냐는 친구들의 비아냥거림도 권 제후, 사람 달라졌다고 신기한 눈으 로 쳐다보는 여자들의 시선도 상관없었다.
그저 그만을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권 제후가 만든 시간 속에서 권 제후를 생각하는 것으 로 아란의 머릿속을 채워주고 싶었다.
오빠, 이거 봐요! 아란이 갑자기 제후의 팔을 잡으며 멈춰 섰다.
학교 앞 분식점에서 칼국수로 저녁을 먹고 소화 시킬 겸 아이쇼핑을 하다가 쇼윈도에 걸린 목걸이가 예쁘다고 들른 보석 전문점 안이었다.
크리스탈로 만든 거래요.
너무 예쁘죠? 아란이 가리킨 것은 손 안에 들어올 만큼 작은 큐피드 상이었다.
앙증맞은 날개를 달고 하 트가 달린 화살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는.
사줄까? 카운터에 있던 여직원 중 하나가 쪼르르 달려오는 걸 보며 제후가 말했다.
정말요? 제후가 말했다.
안 될 게 뭐야.
너나 나나 어차피 돈만 남아도는 집 자식들이잖아.
내가 맘만 먹으면 이 http://love.kbsyo.com 보석가게 전부를 사다가 안겨줄 수도 있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제후의 말투에 아란이 웃는다.
소리 없는 웃음에 그녀의 양 볼에는 깜찍한 볼우물이 진다.
두 개였으면 좋겠는데 손때가 묻을까 조각상 아래 빌로드 천이 깔린 상자를 통째로 들고 있던 아란이 중얼거렸다.
응? 이거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요.
오빠하고 나하고 하나씩 나눠 갖게.
짝 있어요, 손님.
보여드릴까요? 옆에 있던 직원이 카운터로 따라 오란다.
마음만 먹으면 이 보석가게 전부를 사서 안겨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던 까닭에 그녀의 태도는 굉장히 친절했다.
여직원이 뭐라고 얘기를 하자 남자직원이 금고를 열더니 비슷한 크기의 상자를 꺼내고 뚜껑 을 연다.
하트에 화살이 꽂힌 모양의 조각이 누워 있었다.
예쁘다! 아란의 감탄사에 제후가 어깨를 으쓱, 했다.
직원들과 주인의 낯에 화색이 떠오르는 걸 보니 꽤 값이 나가는 모양이었다.
두 분 사귀는 사이세요? 귀족적인 고상함에 적당한 반항기가 돋보이는 근사한 외모까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남자 였다.
여자의 예쁘다는 말 한 마디에 망설임 없이 지갑을 꺼내고 카드를 긁는, 성격 화끈한 남자 의 뒷모습을 보던 여직원 하나가 상자 두 개를 포장하며 말을 붙인다.
남자친구가 아가씨한테 푹 빠져 있는 것 같던데 그래요? 아란은 가게 밖에 나가 담배를 태우고 있는 제후를 창 너머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가능성은 없었지만 듣기는 좋았다.
이왕이면 커플링도 하지 그래요? 혼자 덜렁하니 우정 반지 같은 거 끼지 말고, 사귄지 오 래 된 사이면 웃고 있던 아란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즐거워서 까닥거리던 손가락의 움직임도 투명한 유리 위에서 멈추었다.
저희, 부분데요.
부부요? 그치만 남자 분은 반지를 끼고 있지 않던 손님의 달라진 표정을 보고 여직원은 입을 다물었지만 말은 뱉어진 다음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비참함이었지만 아란은 막 포장이 끝난 상자를 들고 훌쩍 밖으로 나와 버렸다.
더 듣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계약에 묶인 부부라서 결혼반지를 끼고 다니지 않는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형식상의 관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끝낼 수 있는 약속.
아란아! 담배를 태우며 친구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던 제후는 그가 기다리는 것조차 잊은 듯 앞 을 지나쳐 황망히 걸음을 옮기는 아란을 보고 대충 통화를 마무리 하고 그녀에게 뛰어갔다.
어디 가.
오늘 할아버지 만나러 가기로 아란의 팔을 잡아 돌려세운 제후는 뜻밖에도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과 http://ccc1.me/naver/1169.html 맞닥뜨린 순간 말 을 끝맺지 못하고 입만 벌리고 있었다.
원망, 분노 하여간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이었다.
낼까요? 목이 메는 음성으로 아란은 제후를 쳐다봤다.
그냥 우리 여기서 끝낼까요? 뭐? 할아버지 앞에서 오빠가 사 준 선물이라고 좋아하며 자랑하는 아란의 얼굴을 볼 기대감으로 들떠 있던 제후의 낯이 구겨졌다.
해도 해도 안 될 사람들이라면 그냥 여기서 끝내자고요!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을 시간도 달래줄 틈도 없었다.
하얀 얼굴 가득 눈물을 터트린 아란 은 그대로 뒤돌아서 뛰어가 버렸다.
뭐야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아란이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건 처음 보았다.
그만큼 당황스러웠다.
바닥 에 떨어진 상자를 주워 올리며 제후는 아득한 불안함으로 심장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죄죄송합니다, 손님.
아까의 여직원이 옆에 서 있었다.
제가 실수를 했어요.
두 분이 결혼하신 줄도 모르고 그만 커플링이나 하는 게 어떻겠냐 고 커플링? 제후는 무심결에 왼손 약지를 내려다보았다.
아란과는 달리 어떤 구속도 허용치 않을 것처 럼,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처럼 텅 비어 있는 그의 손가락을.
직원이 알고 말했던 것도 아니고 제후의 고의도 아니었지만 비싼 선물을 덥석 안겨주고는 아란의 마음을 깔아뭉갠 꼴이 되고 말았다.
진작에 끼고 다녔어야 했는데 쑥스러움에 미뤄두었던 일이 치부를 드러내 그녀가 망신을 당 하게 만들었다.
뭐야?! 당신 눈에는 그 비싼 반지가 고작 우정 반지로 보였단 말야? 죄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보상을 해야 이 여자에겐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후는 화가 났다.
아니 그보다, 바람이 팽팽했던 풍선이 터져버린 것 같은 아란의 눈동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화를 냈다는 건 그에게 기대하고 있던 것이 깨졌기 때문이라는 뜻인데 말이다.
나한테 기대를 해? 그 남자가 아닌 나한테? 본가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었다.
할아버지가 생신 때의 일에 대해 뭐라고 꾸중을 하셨는지 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제후는 집에 가면 아란의 화를 어떻게 풀어줘야 하는가만 고민하고 있었다.
여자의 눈치를 보는 일이 익숙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라면 용기를 낼 수도 있는 제후였다.
불안하진 않았다.
어느 덧 심장을 내 준 사람이기에 그리고 문득 문득 기대를 갖게 만드는 아란의 행동에 대한 설레임이 가슴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상한 속을 달래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이라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건 아닌가 했지만 옥외 주차장에서 떨리는 맘으로 올려다 본 그들의 보금자리에는 불이 커져 있었다.
저녁나절, 그렇게 아란과 헤어지고 내내 구겨져 있던 제후의 얼굴이 반가움으로 펴졌다.
엘 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고작 3층 내려오는 http://ccc1.me/naver/3641.php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가쁜 호흡에 들먹이는 심장을 억누르며 벨을 누르려는 찰나 문이 먼저 열렸다.
왔어요? 어응.
아까 그러고 간 게 미안해선지 아란은 어색한 음성으로 눈을 피한다.
그래도 죄책감이 드는 건 아란이 아니라 제후 쪽이었다.
집에는 언제 왔어? 온 지 한 시간쯤 됐어요.
할 말만 하고 가버리는 아란의 어깨에서 바람이 인다.
그 모습을 보자 잠시나마 가졌던 제 후의 설레임은 구석으로 밀려난다.
아까 그 말 왜 한 거야? 내던지는 말이 퉁명스러웠다.
아란이 침실로 향하던 걸음을 멈춘다.
말해두겠지만 우리 결혼 오빠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죠.
아란이 말을 가로채며 뒤돌아섰다.
내가 아쉬워서 매달린 결혼이니까 혼자였던 생활로 돌아간다고 해도 오빠는 별로 아쉬울 게 없다는 거죠?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에요? ! 내 마음 같은 거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는 거죠? 내가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받아들였는지 오빠한테는 아무 상관없는 거죠? 굵은 눈물방울이 아롱져 바닥으로 떨어진다.
제후는 울컥하는 마음에 아란의 손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그러는 넌! 너만 아픈 게 아니란 말이다.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를 아내로 두고 사는 나는 편한 줄 알아? 멀쩡한 줄 알아? 넌 뭘 그렇게 잘했는데? 날 다그칠 만큼 순결한 요조숙녀에 조강지처야? 겉으로는 나밖 에 모르는 여자처럼 하고 다녀도 막상 뒤로는 여우짓하고 다니는 지 어떻게 알아? 아니에요나 정말 사랑하는 사람 오빠밖에 없어요.
왜 몰라요 꼭 말로만 해야 되는 거에요? 마음으로 날 봐줄 수는 없는 거에요? 내 심장이 누구를 위해 뛰고 있는지 알기나 해요? 악에 받친 한 마디가 아란의 입을 뚫고 터져 나왔다.
나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잖아요.
알려고 하지도 않잖아요.
오늘오늘이 무슨 날이었는 지 오빠는 알기나 해요? 제후의 눈빛이 주춤했다.
아란이 제후의 손을 뿌리쳤다.
오늘 내 생일이었어요.
축하한다는 말 듣고 싶었어요.
엄마 돌아가신 이후로는 축하받은 기억도 없는 날이지만 그래도 오빠에게만은 단 한 사람 오빠에게만은 더 이상 비참해질래야 비참해질 수도 없었다.
손으로 가리는 것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 큼 눈물이 시야를 가리는 걸 느끼며 아란이 뛰쳐나간다.
멍하니 서 있던 제후가 탕! 문 열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아란아! 제후는 신발도 신지 않고 따라 나갔지만 아란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황급한 심정 으로 그녀를 찾는 그의 귀에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꺄아악! 사람이 다쳤어요, 누가 좀 도와줘요! 설마 하는 불안감에 심장이 내려앉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면 서 제후는 여자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이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그리로 모여들었다.
이름도 모르는 이웃들을 헤치고 들어간 제후의 눈이 커졌다.
아란아! 계단 아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분명 아란이었다.
벗겨진 한 짝의 신 발이 계단 중간에 걸쳐져 있었다.
아란아, 제발! 넋 나간 표정으로 아란을 안아든 제후가 창백해진 그녀의 뺨을 두드리다 말고 웅성대며 모 여선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뭣들 하는 거에요! 사람이 다쳤는데! 구급차, 누구 구급차 좀 불러줘요!! 가벼운 뇌진탕이라면서! 그거 말고는 다친 데도 없다면서 왜 깨어나지 못하는 거야? 방안이 다 쩌렁쩌렁 울렸다.
의사 생활 25년에 http://naveryo.com/naver/3222.html 이렇게 막 되먹고 시끄러운 보호자는 처음 보겠다고 생각하며 가운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꺼냈다.
자자, 일단 진정하시고 자리에 앉으십시오.
그래야 저도 무슨 말씀을 드리던지 할 것 아 닙니까? 뒤에 서 있던 권 회장이 제후의 어깨를 두드렸다.
노인의 자애로운 눈빛이 거친 감정에 휩 싸인 손자의 마음을 다독였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환자분에게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약간의 타박상과 골절상을 입 은 것 외에는 이봐, 의사 선생!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뭔가 새로운 걸 얘기해 보라고! 나는 왜 아란이 가 깨어나지 못하는지에 묻고 있잖아! 제후야! 할아버지의 엄한 목소리에 제후는 억지로 숨을 가라앉혔다.
의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문제는 환자분이 거부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무의식중에 깨어나는 걸 거부하는 것 같습 니다.
뭔가 두려운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지금으로썬 무슨 말씀을 드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확약도 드릴 수가 의사가 말끝을 줄였다.
제후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구급대에 실려 온지 벌써 사흘 밤낮을 넘겼는데 아란은 죽은 듯이 잠만 잘뿐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죽은 듯이.
내 심장이 누구를 위해 뛰고 있는지 알기나 해요? 나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잖아요.
알 려고 하지도 않잖아요.
오늘오늘이 무슨 날이었는지 오빠는 알기나 해요? 오늘 내 생일이었어요.
엄마가 돌아가 신 이후로는 축하받은 기억도 없는 날이지만 그래도 오빠에게만은 단 한 사람 오빠에게만은 생각할수록 가슴이 무너졌다.
이대로 영원한 잠에 들어 깨어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다시는 아란의 맑은 웃음을 볼 수 없 는 건 아닌가 방정맞은 생각들이 하루에도 열 두 번은 머릿속을 오가는 제후였다.
지친 발을 끌어 병실로 돌아왔다.
깊은 잠에 든 아란의 얼굴은 평온해보였지만 그와 함께 하는 일상이 두려워 일어나지 못한 다는 말에 제후의 가슴은 핏빛 멍울이 지고 몇 톤짜리 돌을 얹은 것 마냥 무거웠다.
다가가 의자를 끌어다놓고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대고 눈을 감았 다.
눈물 한 줄기가 제후의 뺨을 타고 흘렀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잖아.
나한테 실망하고 화나더라도 내가 철이 들 때까지 기다리고 참아주라.
부부란 원래 그런 거 잖아.
나란 놈한테 실망해서 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널 채웠다고 해도 이런 모습이 마지막이면 안 되는 거잖아.
아란아 내 목소리 들리면 좀 일어나봐.
내 마음 알기 http://naveryo.com 전까지는 멀리 가지마.
나 놔두고 혼자 먼 데로 떠나지마.
다시 그녀 없는 시간이 흘렀다.
네 번의 낮과 밤이 일상을 만들며 지나갔다.
학교에는 가야 된다는 할아버지의 엄명에 따르 긴 했지만 제후는 아란의 간호를 맡은 사람이 할머니임에도 불구하고 안절부절 이었다.
강의가 끝나면 끼니를 챙길 틈도 없 이 달려오곤 했다.
제 에미 애비가 죽은 후로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집중하는 모습을 본 적 없는 권 회장은 손 자며느리가 걱정되면서도 아란에게 몰두하는 제후의 모습을 다행스런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제후는 남편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그의 생일에 아란과 부모님과의 관계를 모르는 척 했던 것도 손자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서였다.
아란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쉴 곳을 찾지 못해 헤매던 마음이 안식처를 찾았다는 걸 말이다.
이제 미움 받는 역할은 그만해도 될 것 같군.
그동안 수고했네.
어느 날 새벽인가 아란을 간호하다 곁에 엎드려 잠이 든 제후를 보며 권 회장은 병실을 나 와 밖에서 문병 차, 들렀던 공범에게 말했다.
그 녀석이 미처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처음부터 좋아했을 걸요.
민준이 미소로 답했다.
그런데 언제쯤 말해주는 게 좋을까요? 이번 일도 있고 두 사람 다, 슬슬 진실을 알 때도 된 것 같은데.
내버려 두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제 3자보다 서로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이 제일 행복할 테니까.
제후가 마음을 숨기는 바보짓만 하지 않는다면요.
그 때 낮은 굽의 샌들을 신고 복도를 뛰어오는 간호사 한 명이 있었다.
그녀는 권 회장에게 다다르자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은 아란씨 보호자 되시죠? 빨리 병실에 좀 와주셔야겠어요.
우리 아이가 깨어났습니까? 그게 아니고 병실로 환자분의 아버지라는 분이 찾아오셨는데 손자 분이 막 더 듣지 않아도 상황을 짐작하는 권 회장이었다.
제후가 아란의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도 알고 있는 이상은 그랬다.
어둠에 묻힌 복도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진 병실이 http://cye.daumkor.co.kr 있었다.
활짝 열린 문으로 넓은 용적의 빛이 바닥을 비추고 거기선 남자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가! 여기서 사라지라고! 당신이 무슨 아버지라고 딸이 다쳐서 입원해 있는데도 일주일 동안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는 당신이 무슨 아버지야.
의사가 뭐라고 한 줄 알아? 잘못하면 평생 저러고 있을 수도 있대.
부모라는 사람들이 결 혼이란 명목으로 팔아넘긴 딸이 영원히 잠들어서 죽을 때까지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대! 그거 알기나 해? 깨어나면 두려 운 일이 기다리는 것처럼 깨어나는 걸 거부하고 있대.
이보게 권 서방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란의 아버지가 사위에게 낯을 보이며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제후 가 말을 가로챘다.
당신과, 당신의 새 아내에게는 눈에 거슬리는 짐이었는지 몰라도 아란이 이제 나한테는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야.
누구한테도 상처받지 못하게 내가 지킬 거고 아무도 이 아이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일 있으 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 가.
여기서 사라지고 다시는 오지 마! 절규.
그리고 차마 말해주지 못한 사랑.
우리 누나 아파?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문틈으로 제후와 은 사장의 대화를 듣고 있던 권 회장과 민준의 귀에 아이의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 이제 못 일어나? 재영이었다.
엄마보다 배다른 누나를 더 따르던 그녀의 동생이었다.
아저씨 우리 누나 죽었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재영이 제후의 바지를 잡고 흔들었다.
재수 없는 소리 집어 쳐! 죽긴 누가 죽었다고 그래! 아이의, 아란을 빼닮은 눈동자에 다시금 죄책감이 스며들었다.
제후는 아이가 놀랄 수 있다 는 것도 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방금 아저씨가 그랬잖아.
아저씨가 그랬잖아.
끅끅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재영은 누나의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부벼대는 눈이 붉었다.
제 후는 한숨을 쉬며 아이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추었다.
미안하다, 꼬마야.
아저씨가 잘못했어.
누나 안 죽어.
그냥 자고 있는 거잖아.
일어날 거야.
꼭 일어나서 널 안아줄 거야.
누나에게 http://alr.me 그랬던 것처럼 재영은 제후의 목을 두 팔로 감았다.
아이들 특유의 달콤한 체취가 한가득 안겨왔다.
제후는 아란을 안듯이 아이를 꼭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달랬다.
아무 일 없을 거야정말로.
목이 메어왔다.
제후야.
민준이, 그리고 할아버지가 문간에 서 있었다.
본의 아니게 엿들은 꼴이 되어 버렸구나, 미안하다.
언제 오셨어요? 그리고 민준이 너는? 제후는 재영을 안은 채로 일어났다.
아란이 문병 왔다가 할아버지를 만나서 담배 한 대 태우고 들어오는 길이야.
괜찮아? 네 녀석 온 건 하나도 안 반가워.
민준이 피식 웃으며 사돈과 함께 나가는 권 회장을 쳐다봤다.
은 사장의 무거운 걸음새를 보아하니 긴 얘기가 될 것 같았다.
곧 반가워하게 될 걸.
너, 나하고 잠깐 얘기 좀 하자.
아란이 걱정되면 여기서 해도 좋 고.
옆 침대에 재영을 재워놓고 있을 때 캔 커피 두 개를 든 민준이 병실로 돌아왔다.
너 어제도 밤샜다면서 몸은 괜찮은 거냐? 중간 중간 자니까 견딜 만 해.
달고 시원한 냉커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잠이 깨는 듯 했다.
아란이 좋아하지? 캔을 들어올리던 제후의 손이 공중에서 우뚝 멈췄다.
내 말이 맞냐? 긍정도 부정도 아닌 미소가 제후의 입가를 맴돌았다.
민준이 말을 이었다.
뭐 너 하는 짓 봐선 묻지 않아도 당연한 얘기다만 그냥 확인해 본 거다.
그 때 내가 아 란이 좋아한다고 했던 거 기억 나냐?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냐? !! 경악의 표정이 제후의 얼굴에 떠올랐다.
민준이 바닥에 깔린 커피를 마시기 위해 캔을 살살 흔들었다.
그래, 맞아.
나 너한테 거짓말 했다.
난 너 만큼이나 예쁜 여자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친 구의 여자를 노릴 정도로 비열한 놈은 아니야.
그런데 왜 나한테 부탁한 사람이 있었어.
네가 행복해지기를 누구보다 원하는 사람이.
할아버지가? 민준은 제후의 생각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끼어들지 않았으면 어땠을 거 같냐? 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 서투르잖아.
할아버 지는 진실을 깨닫도록 너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거야.
지기 싫어하는 네 성격에 누가 네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가만히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고 싫어도 http://bwin.accs.kr 지키려고 노력할 테니까 두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신 거지.
결 국 할아버지의 판단은 옳았고 지금 넌 여기 이 자리에 있잖아.
아란이도 이 사실 알아? 몰라.
아마 내가 자기한테 접근한 게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걸.
그 녀석, 너도 알겠 지만 사람을 너무 잘 믿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구분도 안 하고 덥석 믿어버려.
제후는 허무함에 웃음이 나왔다.
그 동안의 고민이 다 쓸데없는 거였다니.
말이나 들어보자.
너 아란이 찾아가서 뭐라고 했냐? 어느 덧 경계심을 풀은 눈동자였다.
민준이 싱긋 웃었다.
궁금하냐? 그걸 말이라고 해? 할아버지랑 짜고 나 속인 건 괘씸하지만 사실대로 얘기하면 용서해준 다.
음처음엔 반지 얘기 하면서 속을 찔러봤고 두 번째는 너희들이 계약 결혼 한 거 알고 있다고 했고, 세 번째는 네가 누굴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고 했지.
그랬더니 뭐래? 선배가 뭘 원하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원하는 걸 얻을 수는 없을 거에요, 그러더라.
아마도 내가 자기한테 구애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나봐.
순진한 녀석.
진심하고 장난도 구분 못하는 바보.
가까이 있으면서도 참 어려운 사랑을 하는 커플이었다.
자식이, 그러는 저는 바보짓 안 한 줄 아나.
민준은 아직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고 생 각하는 어리석은 친구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너도 속아 넘어갔으면서 뭘 그래.
나한테 주먹질까지 하고.
한 민준 연기력이 좋았던 거지.
정작 알고 싶은 건 따로 있었지만 제후는 입을 다물었다.
비단 아란의 입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에서라도 그녀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듣고도 멀쩡할 자신이 없었다.
민준아.
왜.
나 힘들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데 그 아이가 원하면 보내줘야 하는데 이상하게 놔 줄 수가 없어.
욕심 부리면 정말 아란이가 달아날지 모르는데 원래 사람 좋아하는 건 다 그런 거야.
민준은 제후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너처럼 지극정성인 남자 놔두고 어딜 가겠냐? http://ajjj.isuim.com 도망가더라도 일주일 동안 잠 못 자 고 밥 못 먹어가며 고생한 네 은공은 갚고 가라고 그래.
민준아.
웃으라고 한 말이었는데 친구를 부르는 한숨이 깊었다.
그런 만큼 그의 사랑도 깊었다.
아란이 쓰러졌던 날, 나한테 처음 화를 내더라.
내 심장이 누구를 위해 뛰고 있는지 알기 나 하냐고, 나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른다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막 울어 버리더라.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아무 에게도 축하받은 적 없다던 생일날에 날 만나고 처음으로 맞는 생일날에 단 한 사람 오빠한테만은 축하받고 싶었다고 그러더 라.
.
사랑이 없어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난 항상 그 앨 다치게만 만들더라.
나중에 보니 까 내가 그 앨 내쫓아버렸더라.
제후야 아, 맞다.
해도 해도 안 될 사람들이면 늦기 전에 끝내자고 아란이가 그러더라.
한 민준, 너 어떻게 생각해? 나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 걸리는 게 많군.
민준은 한 조각 희망도 남지 않은 얼굴로 넋두리를 하는 친구가 가여웠다.
그리고 그의 이런 사랑을 모른 채 마음을 가두고 잠이 들어있는 아란에게 화가 나려고 했다.
아란이 보내고 너 혼자 살 자신 있어? 자신이야 있지.
미쳐버릴 자신.
죽어도 돌아볼 사람 없으니 원혼이 되어 세상을 떠돌 자 신.
그럼 보내지마.
무슨 일이 있어도 곁에다 꼭 붙들어 두고 살아.
내가 너 사랑하니까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곁에만 있어달라고 졸라.
은 아란은 착하니까 소원을 들어줄 거야.
억지 부려서 더 정 떨어진다고 하면? 이런 겁쟁이! 권 제후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냐? 그럴 일 없을 거야.
내가 장담해.
민준은 제후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웃어주었다.
제후를 향한 아란의 마음을 알기에 자신 있었다.
그의 친구는 확실히 달라졌다.
조각 같은 외모와 냉담한 분위기로 여자들을 녹이던 권 제후 는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사랑을 처음 하는 사람처럼 이런 말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겁을 내고 두려워하고, 고 민을 했다.
만약 아란이 끼고 다니던 순결반지의 주인공이 바로 자기라는 걸 알게 되면 제후가 뭐라고 그럴까 문득 궁금해지는 민준이었다.
제후야.
병원 로비.
그를 배웅하러 나온 친구에게 민준은 마지막 충고를 했다.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아란이네 아버지한테 심하게 굴지 마라.
판단은 네가 아니라 아란 이의 몫으로 남겨둬야지.
아무리 그래도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게 해주신 분 아니냐.
알았어.
아란이 일어나면 그동안 장난쳐서 미안했다고 대신 사과도 건네주고.
알았다니까.
택시를 부른 민준이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든다.
마주 손을 흔들어주고 제후는 병실로 돌아왔다.
아직도 깊은 잠에 들어 있는 아란을 보았지만 이제는 기다림마저 달가웠다.
제후는 아란이 의식을 잃고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잠이 들어 있는 것처럼 평온한 얼굴을 보며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키스를 하면 일어나지 않을까 엉뚱한 상상마저 들었다.
http://kwsc.net 입술이 닿았다.
깨어 있을 때처럼 여전히 보드랍고 향기가 난다.
!! 세 번째 키스를 하고 제후가 얼굴을 들려했을 때 목에 둘려지는 것이 있었다.
가늘고 미약 한 움직임이 동시에 느껴졌다.
설마, 설마!! 가슴 가득 벅차오르는 기대감에 제후는 감았던 눈을 떴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아란의 눈 동자가 무려 8일 만에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너너 말이 나오질 않았다.
한없이 기쁜 순간에 너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응, 나 일어났어요.
나 진짜 많이 잤죠? 젠장!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에 왈칵, 목이 메어 오고 있었다.
아란은 제후의 몸을 가만히 밀면서 일어났다.
제후가 얼른 아란의 어깨를 잡아 부축해주었다.
그래, 이 잠꾸러기야.
무슨 잠을 8일씩이나 자냐?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넘겨주다가 제후는 부서질 것 같은 아란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며 칠 사이 수척해진 몸에, 줄무늬 환자복 속으로 느껴지는 헐거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안해요.
빨리 일어나려고 했는데 누가 발을 잡고 안 나줬어요.
눈을 뜨고 네가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반겨줄 사람 아무도 없다고 그냥 여기서 살라고 그랬어요.
까만 옷에 얼굴도 없는 무서운 사람이 자꾸 날 붙잡았어요.
무서웠어? 아란은 대답을 하지 않고 손깍지를 끼어 제후의 등을 안았다.
그의 어깨 언저리가 천천히 젖어왔다.
그녀의 몸이 흐느낌으로 떨리고 있었다.
미안해 입술을 깨물었다.
가까스로 참아내는 그녀의 눈물은 고통이 되어 제후의 심장으로 배겨왔다.
다시는 너 혼자 무서운 꿈에 남겨두지 않을 거야.
.
쫙벌녀 우린 항상 같이 있을 거야.
언제든 널 지켜줄 거야.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하게 그리고 나도, 널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아란의 감은 눈꺼풀에 입을 맞추며 제후는 말했다.
창 밖으로 먼동이 트고 있었다.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 날과 하늘을 두고 제후는 그렇게 가 슴을 저리며 찾아온 첫사랑을 고백했다.
아빠가 새엄마랑 헤어지기로 했대요.
은 사장의 전화를 받고 나갔던 아란이 저녁때를 훌쩍 넘겨 들어와 하는 말이었다.
아빠 없는 동안에 나한테 함부로 한 거 전주댁 아줌마한테 들었나 봐요.
그동안 아빠 노 릇 제대로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그랬어요.
전주댁 아줌마는 아란이 여섯 살 때부터 은 사장네 살림을 봐줬던 사람이었다.
엄마가 돌아 가시고 나서 유일하게 정을 붙인 사람이라고, 새 엄마가 들어와 알게 모르게 구박을 받으면서는 더욱 의지를 했던 사람이라 고 아란은 얘기하곤 했었다.
재영이는? 엄마가 데려가서 키운다고 하셨는데 확실한 건 모르겠어요.
원래 재영이가 새 엄마보단 나하고 아빠를 잘 따랐거든요.
제후는 알 만 하다는 듯 말했다.
치장하고 가꾸느라 아이 돌 볼 틈도 없었나보지.
아마도요.
아란의 얼굴에서 긍정의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래도 http://love.kbsyo.com 새 엄마가 계서서 아빠가 행복하다면 난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왠지 아빠가 이혼 을 결정하신 게 나 때문인 것 같아서 죄송스러워요.
난 아무래도 좋다는 사고방식은 버려.
남을 위해서 희생할 생각만 하지 말고 좀 이기적으 로 굴어봐.
아란이 넌 행복할 자격 충분히 있어.
제후는 마주 앉았던 소파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아, 그리고 나 커피 마실 건데 생각 있으면 같이 마시자.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구수한 커피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휘파람을 불면서 주방으 로 들어가는 제후를 보며 아란은 혼자 웃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제후는 줄곧 다정한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처음엔 보상 심리 때문인 가 의심도 해보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의 다정함은 변함이 없었고 스스럼없는 장난기와 짓궂은 행동은 그들이 보통의 신혼부부 처럼 살고 있다고 아란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계약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랑해서 만난 사람들처럼 말이다.
알았지? 끝내자는 말 절대로 하지 마.
이제 겨우 두 달 좀 넘게 살아보고 맞는다느니 안 맞는다느니 그런 말은 하지 않기로 약속하자.
퇴원 기념으로 찾은 레스토랑에서 제후는 그런 말을 했다.
손을 끌어다 잡으며 조심스레 말 을 내는 그의 눈을 보면서 아란은, 제후와의 관계에 좋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고 머잖아 그의 마음이 진 심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제후를 믿게 되었다.
요즘만 같으면 세상에 무엇도 바랄 것 없는 사람처럼 아란은 행복했다.
거기에 욕심 부려 한 가지 소원을 빈다면 그도 그녀를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녀 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고 싶었다.
커피 향 좋지? 좋아요.
커피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아란이 한모금의 향을 들이마셨다.
정말이지 저 웃는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될까봐 애태웠던 걸 생각하면 그녀가 얄밉기까지 한 제후였다.
잔잔히 부딪치는 시선에 아란이 뺨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근데 왜 그렇게 쳐다봐요? 예뻐서.
제후는 턱을 괴고 키득 웃었다.
장난치지 마요.
장난 아닌데.
진짜 예뻐서 예쁘다고 하는 거야.
한층 노골적인 시선에 부끄러움이 또르르 몰렸다.
아란은 잔을 손으로 감싸고 살그머니 제 후의 눈을 피한다.
그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왜 모르고 살았을까.
너처럼 귀엽고 착한 아이 옆에다 두고도 왜 모르고 지냈을까.
커피를 다 마신 아란이 잔을 씻어 물기가 빠지도록 받침대에 얹고는 허둥지둥 주방을 나간 다.
뒷모습을 쫓던 제후가 벌떡 일어나 그녀를 따랐다.
그리고 아란의 팔을 잡아 침실로 들어간 다음 문을 잠갔다.
아란아.
보상 받고 싶다.
너 없이 혼자 보냈던 것만큼 우리의 시간을 행복한 기억으로 채우고 싶다.
오늘 http://ccc1.me/naver/1169.html 너 안아도 돼? 그그치만 거절해도 소용없어.
보름동안 참아줬으니까 오늘은 내 맘대로 할 거야.
물러서는 그녀의 허리를 감아 안으면서 제후는 아란의 몸을 침대에 밀치듯 쓰러트렸다.
성 급한 손길을 따라 드러나는 여자의 몸에 호흡이 가빠왔다.
건강이 나빠졌다고 며칠 햇빛 구경을 안 시킨 탓인지 피부가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이 아 름다운 몸을 옷으로 가리면 오히려 죄가 될 것처럼 보였다.
내일 토요일이지? .
그럼 우리 밤새도록 여기서 놀자.
전화와도 받지 말고 누가 벨 눌러도 열어주지 말고 내 일 아침까지 놀다가 자자.
몰라요.
싫어요가 아니라 몰라요다.
늘 처음 만난 남자에게 몸을 열어주는 것처럼 아란은 수줍음을 많이 탄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도 잘 하면서 그에게만 그런다.
그런 아란의 행동이 제후에게는 <당신은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 졌다.
그리고 매번 처녀를 방문하는 것 같은 짜릿함을 선사했다.
싫으면 지금 말하던가.
아란이 시트를 끌어올려 가슴을 가리면서 말했다.
싫어도 오빠 맘대로 한다면서요.
후후, 이제 보니 삐지기도 하잖아? 제후는 아란의 화내는 모습이 신기했다.
언제나 그 앞에선 쥐 죽은 듯 꼬리를 내리고 하라 는 대로 따라주던 그녀가 처음으로 반항이라는 걸 했다.
은 아란.
야릇한 붉은 빛이 아란의 얼굴에 떠돌았다.
지금 당장 아란의 몸 안으로 침입해 들어가고 싶은 걸 참으면서 제후가 말했다.
내가 어떤 여자 좋아하는지 말해줄까? 어떤 여자좋아하는데요? 그녀가 순진하게 되묻는다.
역으로, 아란의 몸을 아래에 두고 있는 제후의 얼굴은 짓궂은 헌 터의 표정이 된다.
오늘 밤 넌 죽었어, 라는 뜻이다.
나한테 저항하는 여자.
좋으면서도 싫다고 말해서 날 더 부추기는 여자.
수차례의 절정이 지났다.
몸과 몸이 먹고 먹혔다.
흥분을 부추긴 대가로 아란은 밤새도록 시달렸지만 한 번도 제후를 거절하지 않았다.
물러서지 않을 거야.
오빠가 원하는 게 내 몸이라면 나한테 빠져서 절대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 거야.
나한테 집착하도록, 그래서 나 외에는 누구도 느낄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릴 거야.
새벽녘에 풋잠이 들었던 제후는 아란이 뒤척이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부스스한 얼굴로 시 계를 쳐다보니 아침 7시 30분, 샤워도 하지 못하고 잠이 든 지 겨우 세 시간이 지났다.
제후는 끄으응, 기지개를 켜면서 눈을 깜박여 눈 안으로 들어온 빛을 몰아냈다가 다시 실눈 을 뜨고 옆에 누운 아란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적어도 정오까지는 깨지 못할 것처럼 아란은 곤한 잠에 들어 있었다.
제후는 아란을 끌어다 안으면서 동그란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몸을 개켜 일어났다.
몸살이 난 것처럼 몸이 http://ccc1.me/naver/3641.php 쑤시고 아팠다.
뜨겁고 격렬했던 정사(情事)의 보상이라 그것도 기꺼 운 제후였다.
시트가 눌렸다 제 자리로 돌아오면서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반짝하는 기 운에 욕실로 들어가던 제후가 되돌아 와 그것을 주웠다.
결혼반지였다.
제후의 손가락에 얌전히 자리하고 있는 녀석의 짝이다.
아란이 일부러 빼지는 않았을 테고 아마도 어젯밤의 정신없는 상황에 빠트린 모양이다.
정신없는.
풋 그렇게 좋았나? 황홀한 기억을 되살리며 미소 짓는 제후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가느다란 백금 링 안에 글자가 새겨져있는 게 보였다.
이니셜이다.
제후는 반지를 쥔 손을 힘주어 쥐었다가 펼쳤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불안감이 간만에 찾아 온 나른한 행복을 좀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아란이, 좋아하는 사람 있다.
두렵지만 보고 싶었다.
그녀의 사랑을 차지한 사람을 알고 싶었다.
누구일까? 결혼반지에 이니셜을 새길 정도라면 굉장히 소중한 사람일 텐데, 한 번도 손가락에서 반지 를 빼지 않았던 건 결국 다른 사람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서였던 걸까? 제후는 가슴이 쓰렸다.
그러나 피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덧 땀이 고인 손바 닥에서 반지를 들어 빛이 잘 드는 쪽으로 들어올렸다.
첫 글자는 K였다.
JH? KJH.
뭐야, 내 거하고 똑같 무심코 내뱉은 진실에 제후의 눈동자가, 입이 그대로 굳어버린다.
그러다 천천히 몸을 돌려 세상모르고 잠이 든 아란을 쳐다봤다.
그녀는 말했었다.
내 심장이 누굴 위해 뛰고 있는지 알기나 하냐고.
야? 정말 나야? 네가 좋아하는 사람 정말로 권 제후야? 콧소리까지 내며 자고 있는 그녀가 대답할 리 없건마는 제후는 또 묻고 있었다.
야, 한 민준.
제후 놈 왜 저렇게 분위기 잡냐? 또 와이프랑 한 판 했대? 도서관 자리에 가방을 두기 무섭게 담배를 태운다고 나가는 제후였다.
책상에 쌓은 전공서 적들을 보며 한숨을 쉬던 서훈이 칸막이 사이로 몸을 제껴 민준을 쳐다보며 하는 말이었다.
남들은 리포트 마감 맞추느라 골 빠개지는 이 때 얄밉게 돌아다니기나 하고 말이야.
저 자식 머리 좋고 손 빠른 건 알지만 너무 한 거 아냐? 머리 나쁘고 손 늦은 너하곤 다르게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지.
내버려둬.
장난스런 무시로 서훈의 입을 막은 민준이었으나, 민준도 얼마 못가 의자를 뒤로 빼고 일어 났다.
궁시렁 대며 책을 넘기던 서훈이 다시 고개를 돌린다.
넌 또 어디 가? 나도 담배나 한 대 태우려고 그런다.
금방 들어올게.
http://naveryo.com/naver/3222.html 서훈이 콧방귀를 흥, 뀐다.
어이구! 자식이 저만 의리 있는 척 하고 있네.
제후 놈 걱정 되서 그런다고 말하면 내가 너 잡아먹을까봐 그러냐? 친구 사이에 별 걸 다 숨겨.
민준은 이해해줘서 고맙단 표시로 손을 들어보였다.
그리고 주머니에 든 담뱃갑을 확인한 다음 밖으로 나와 제후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았다.
제후는 도서관 밖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저 자식 오늘만 담배 한 갑이 넘는데 와이프 마음 알았으면 됐지 또 뭐가 문제인 거야? 불 좀 빌리자.
민준은 털썩, 제후 옆에 주저앉으며 담배를 내밀었다.
뻔히 쳐다보는 표정에 약간의 놀라움 이 깃들었다.
뭐해? 불 좀 빌리자니까.
허연 연기가 둘이 되었다.
새 담배의 3분의 1이 타들어가도록 아무 말이 없던 침묵은 기다 리다 지친 민준이 말을 꺼내면서 깨졌다.
잘 나가다 왜 그러냐.
사랑하는 여자 마음 얻은 걸로는 부족했어? 난 나를 잘 알아.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지만 민준은 금방 제후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뭐가 두려운 건데.
끝까지 가지 못할까봐?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던 여자들.
그 속을 헤매던 방황에서 찾은 한 사람.
아니면 아란이야? 버리게 될까봐 두려우냐 버림받는 것이 두려우냐, 민준은 묻고 있었다.
대답을 않는 것으로 보아 둘 다 인 것 같았다.
네 곁에 있으면 행복하지 못할까봐 겁나냐? .
미친 놈.
네 곁에 누구씨는 행복해서 죽을라고 하더라.
아란이 그 녀석 생각하는 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거 알지? 민준은 피다 만 담배를 밟아 뭉개며 말을 보탰다.
행복해 하고 있어.
네 눈에 보이잖아.
너도 알고 있잖아.
그 일 권 제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괜히 쓸데없는 궁상떨지 말고 지금 하는 만큼만 해 줘.
넌 해 보지도 않은 놈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알려고 해서 알아진 게 아니라 눈에 보인다고 했잖아.
너희 둘 사랑하는 거 눈에 보여.
서 로의 곁에서 행복해하고 안타까울 정도로 소중히 여기는 모습들이 보여.
비로소 보이는 웃음이 서글펐다.
민준아 나 제후의 핸드폰이 삐빅 신호음을 냈다.
문자 메시지였다.
제후가 말을 하려다 말고 메시지를 확인한다.
누구야? 아란이? 어.
6시에 경상대 앞에서 만나기로 한 걸 깜박했네.
그러더니 제후는 이렇다 할, 양해도 구하지 않고 도서관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리고 수 분 후 다시 나와 정신없이 가방을 메고 경상대 건물이 있는 쪽으로 사라져버린다.
뭐야, 저 녀석.
얼음 왕자에서 공주의 똘마니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혼자 남은 민준이 바닥에 떨어진 제 후의 담배를 보며 너털웃음을 지어본다.
사랑을 하는 친구는 행복해 보였다.
한 달음에 도착할 듯 걸음을 재촉했던 제후는 아란의 모습이 보이기 불과 몇 미터 전에서 멈추었다.
아란의 곁에 있는 남자 때문이었다.
저번에 본 채석이라는 아이는 아니다.
아란이 그 남자와 다정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도, 미소를 지어주는 것도 아니지만 발은 저절로 서버렸다.
처음 보았을 땐 무작정 손을 낚아 채 데려오고 친구 앞에서 무례한 키스를 퍼붓기까지 했는 데 지금은 소중한 그녀를 그리 대할 맘도 대할 용기도 없다.
하지만 잠시 동안 심장을 욱죄어 오는 통증은 사실이었다.
지금은 가지 말라고 겁먹은 머리가 명령을 내린다.
아란이 다른 남자와 얘기대화의 내용에 상관없이하는 모습만 보면 사라지는 자신감도, 언제 그녀가 그를 버리고 행실 좋고 반듯한 사람을 찾아 가버릴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커져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조심스러웠다.
화를 낸다기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제후의 마음을 알았던 듯 그 모습은 그리 오래 눈에 비치지는 않았다.
손짓을 해가며 대화 를 주고받던 남자가 목례를 하고는 사라진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인사를 받은 아란이 몸을 나무 그늘의 기둥에 기대며 이내 입 을 가리고 하품을 한다.
오빠.
무심코 돌린 시야에 제후의 모습이 들어오자 아란이 환하게 웃으며 그를 부른다.
아까와는 다르게 서두르지 않는 보폭으로 제후는 아란에게 걸어갔다.
오래 기다렸어? 이제 6시 20분밖에 안 됐는데요, 뭘.
아란이 손목을 올렸다 내리면서 말했다.
제후는 아란이 오해하지 않도록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오면서 보니까 누구랑 얘기하고 있던데 그 사람 누구야? 아, 봤어요? 여자 친구가 우리 학교 학생인데 처음 와서 길을 모른다고 그러잖아요.
그럼 그렇지.
설마 별다른 일이야 있겠어.
다른 말은 안 했고? 에? 아아니, 이상한 추파 같은 거 던지지는 않았냐고.
어휴, 이 병신! http://naveryo.com 이상한 걸 물어본 것도 아닌데 바보같이 말은 왜 더듬는 거야.
제후는 속 으로 수도 없이 제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건 왜 물어보는 데요? 불현듯 민망해진 표정의 제후와 눈을 맞추던 아란이 눈을 깜박깜박 하더니 고개를 젓는다.
그가 난감해하며 말을 더듬는 건 처음 보았다.
너넌 내가 다른 여자랑 얘기하고 있으면 좋냐? 이런! 예, 아니오의 단답형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그거야 당연히 그럼 됐어, 더 물어보지 마! 북 치고 장구치고 저 혼자 괜히 성질을 부리더니 제후는 혼자서 씩씩 걸어가 버린다.
아란 이 졸졸 뒤를 따라온다.
오빠 뭐 기분 나쁜 일 있었어요? 없었어.
근데 왜 나한테 화내요? 화 안 냈어! 그러니까 자꾸 토 달지 마! 하지만 지금 화내고 있잖아요.
서운함이 실린 음성과 함께 뒤를 따라오던 기척이 멎었다.
제후가 뒤를 돌아보자 아란은 머 쓱한 팔을 쓸어내리며 서 있었다.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굳이 피하지 않고 바라보는 큰 눈에선 금방이라도 떼구르르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고여 있었다.
아란이 다시 제후의 상태를 확인시켜주었다.
오빠 화내고 있다구요.
한숨이 나온다.
왜 소중히 여긴다면서, 좋아한다면서 난 왜 꼭 번번이 저 아일 울리고 마는 걸까.
이제는 정말로 사랑인데.
아란아.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는 그녀였다.
제후는 아란이 마음으로부터 멀어지는 듯한 착각에 재 빨리 손을 내밀어 아란의 팔을 잡았다.
미안해.
됐어요.
사실은 그게그래! 리포트 쓰다가 나왔거든.
모레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출하라고 교수가 닦달을 해서 아마 그것 때문에 신경이 좀 예민해져 있었나 보다.
알았어요.
아란은 잡히지 않은 쪽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럼 바쁘다고 얘기하지 뭐하러 나왔어요.
나 혼자서도 집에 갈 수 있는데.
관심도 없었던 리포트가 도움을 줬다.
제후는 그의 말에는 의심을 할 줄 모르는 아란과 300 페이지 분량의 전공서적을 탐독하고 사흘 만에 리포트를 제출하라는 교수에게 감사했다.
너 어린애잖아.
나 없으면 안 되는.
새록 고이는 웃음에 비로소 마음을 놓고 제후는 아란의 손을 잡았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울었으니까 배고플 거 아냐? 손가락 사이로 빈틈이 채워졌다.
조금 걷다 돌아보는 그의 웃음에 그녀도 붉은 눈을 하고 웃었다.
그것가지고 양이 차? 제후가 보기엔 먹는 것 같지도 않았다.
저녁 사준다고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리고 왔더니 아 란은 샐러드에만 손을 대고 식사를 끝낸다.
배불러요.
봐요.
아란이 손을 펴서 조금도 나오지 않은 아랫배를 톡톡 친다.
그래도 이거 먹고 내일 아침까지 버텨야 되잖아.
정말 배 안 고프겠어? 먹는 걸로는 그렇게 욕심 안 나요.
나중에 우리 아이 가졌을 때도 그럴까봐 겁난다, 야.
애기가 뱃속에서 뭘 먹고 크겠냐? 그거야 모르죠, 그 때 가면 곰탕에 두 그릇씩 밥 말아먹을지.
투덜대는 제후를 아란은 쳐다보며 웃는다.
제후가 먹다 말고 고개를 든다.
왜? 아뇨.
그냥 오빠가 나랑 애기 낳을 때까지 살아줄 생각 하고 있는 게 신기해서요.
아이 오빠 닮으면 예쁠 거에요, 그죠? 아란의 말을 들은 제후가 얼굴을 굳혔다.
살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거지.
부부는 동등한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니까.
명문 S대의 학벌과 국내 건설회사 중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의 딸, 귀족적이고 아름다운 외모.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는 조건을 갖추고도 제후에 대해서는 항상 자기를 낮추어 보는 아란 이다.
자격지심이 아니라 아직 그의 마음을 모르기에 저러는 것이다 이해는 하면서도 제후는 그런 그녀의 태도가 거슬린다.
네가 나에 비해 뭐가 부족한데.
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했던 계약 따윈 이제 신경도 안 쓰고 있어.
그러니 네가 나에 대해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
오빠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 조건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만 생각하면 자신이 형편없어지고 초라해지는 기분이 뭔지 알 수 있어요? 내가 뭐? 제후가 물었다.
아니에요.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아? 사람 궁금하게.
http://cye.daumkor.co.kr 있잖아요, 나 오늘 술 마시고 싶은데.
심드렁하던 제후의 눈동자가 반짝, 놀란다.
아란은 종업원이 접시들을 치운 테이블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면서 말했다.
오빠는 운전해야 되니까 관두고 나 마시는 거만 봐주면 안 돼요? 나 참.
마시려면 같이 마셔야지.
취하면 호텔 찾아서 하루 자면 되잖아.
레스토랑을 나온 두 사람은 제후가 가볍게 맥주를 마시고 싶을 때 들른다는 호프집을 찾았 다.
8시가 갓 넘은 초저녁인데도 단골들이 많아 벌써부터 시끌시끌했다.
어렵사리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뭐 마실래? 오빠가 정해요.
난 아무 거나 상관없으니까.
아란이 순진한 얼굴로 양 팔을 뻗어 소파를 짚고 다리를 모아 앉는다.
투명한 유리 테이블 아래로 허벅지가 반은 보이는 미니스커트가 골반에서부터 아슬아슬하게 감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내 핸드백으로 허벅지를 가리고 있던 게 생각이 났다.
비트 강한 댄스 음악 때문인지 어슴푸레 얼굴에 빛을 드리우는 조명 때문인지 늘 대하는 그 녀임에도 제후는 가슴이 떨린다.
조금만 옆으로 가 봐.
파트너가 있음에도 아란을 힐끔대는 몇몇 남자들의 시선이 영 못마땅했다.
저 자식들, 감히 누구 걸 넘보는 거야? 왜요? 우리가 남이냐? 같이 앉게.
아란이 안으로 물러 들어갔다.
제후는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으면서 손으로 얼굴을 안아 자 기 쪽으로 돌린다.
저항도 않는 입술이 닿았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향이 녹아 입 안에서 뒤엉킨다.
아란을 훔쳐보는 남자들에게 경고를 하려던 것이었지만 애초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촉촉하고 도톰한 입술의 감촉에 취해버리는 제후였다.
키스가 깊어지면서 아란이 반응을 보였다.
팔을 제후의 목에 감고는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더듬는다.
등줄기의 움푹 파인 부분을 제후의 손가락이 훑자 아란은 허리를 휘면서 몸을 바짝 갖다 붙인다.
자잠깐만요, 오빠.
등이 푹신한 소파에 닿기 직전에 아란이 제후를 떠민다.
사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젠장, 뭐가? 입맛을 다시며 제후는 아란에게 기울였던 몸을 세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말처럼 이 게 웬 떡이냐 쳐다보는 눈들이 많았다.
언제 웨이터가 다녀갔는지도 모르게 세팅 된 테이블과, 처음에는 수북하게 올라왔을 맥주 거품의 얇은 층이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고 있었다.
바보 씹탱이들.
남 연애하는 거 처음 보나.
상황의 진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다가 제후는 마지못해 아란을 품에서 놓아주었다.
그녀 는 부끄러운 눈빛이었지만 창피해 하지는 않았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옷매무새를 바로 하며 앉는다.
잘못 했어.
제후는 1700㏄ 용량의 차가운 맥주를 작은 잔에 따라 마시고 입술에 묻은 거품을 혀로 쓰 윽, 핥아냈다.
첨부터 호텔로 가는 건데 잘못했어.
거기 가서 둘이 신나게 즐기는 건데.
다른 데로 갈까요? 아란이 온기가 느껴지는 손을 제후의 무릎에 얹었다.
자그마한 압박감에 제후가 마시던 잔 을 놓고 이게 무슨 뜻이냐는 듯 그녀를 쳐다본다.
하다만 거 계속 하고 싶지 않아요? 말귀를 알아들은 제후가 금세 쿡, 웃었다.
살다보니 요조숙녀 은 아란의 입에서 먼저 그걸 하고 싶다는 말이 나올 때도 있구나 싶었다.
좋아.
제후는 아란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경험자답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연인간의 짧고 비밀 스런 사랑을 나누려면 어디가 좋은지는 숙지하고 있었다.
형, 나 거기 좀 쓸게.
주인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눈짓을 하고 제후는 아란을 데리고 좁은 문을 나와 2층으로 올라 갔다.
작은 문이 있었다.
제후가 손잡이를 돌리고는 아란을 들어가게 했다.
잠만 자는 곳인지 가구 하나 형광등 하나 보이지 않는 방이었다.
키 높은 창문으로 흘러들 어오는 달빛이 야트막한 침대를 비추는 곳이었다.
달칵.
등 뒤로 문이 닫히고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오늘 처음 만난 여자와 남자가 http://alr.me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밀애(密愛)의 장소를 찾은 것처럼 아 란과 제후는 잠시 눈을 맞춘다.
그가 다가온다.
붙잡히는 시선 속에서 천천히 긴장이 고조된다.
제후의 팔이 허리를 감싸오자 아란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본다.
하얀 손가락이 제후의 뺨을 스치고 머리칼을 만지다가 목젖을 스친다.
붉은 입술이 탐스럽다.
늘 품 안에서 익숙했던 향기가 어색하게 코를 스치고 떨리는 손가락의 감촉 아래로 부드러 운 피부는 사르르 밀려난다.
음악소리가 귓가에서 웽웽 멀어져가고 맞닿은 심장소리는 머리끝까지 차올랐다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한껏 달아오른 숨결이 하나가 된 몸을 얽어 묶는다.
뱅그르르 천장이 맴을 돈다.
젖은 숨소리가 방 안을 메운다.
절정의 신음소리가 공중에 부딪치고 야릇한 고통과 쾌감이 뿜어져 나온다.
무저갱(無底坑)의 암흑까지 떨어졌다가 천국의 광명에까지 이른다.
생명과 생명이 만나고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들어맞은 그것은 사랑을 잉태한다.
꿈인 듯 환상인 듯 시간이 멈춘다.
앞으론 종종 술 마시러 와야 되겠는 걸.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후가 하는 말이었다.
한바탕의 격렬한 운동(!)으로 땀을 빼고 난 다음에 마시는 맥주 맛은 더없이 좋았다.
언제는 호텔 가서 둘이 즐기자면서요.
제후가 쳐다보자 아란이 얼른 눈을 돌리고 입을 다문다.
그녀의 하얀 목에 남은 키스마크가 조금 전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는 거야, 싫었다는 거야? 흔하지 않은 아란의 새침한 눈빛에 제후가 운전을 하면서 웃었다.
앵 토라지는 입술이 귀엽 기만 했다.
뭐나쁘지는 않았어요.
차마 대답을 못하겠는지 미적미적, 말을 돌리지만 선수답게 제후는 속뜻을 낚아 채 낸다.
괜찮았으면 집에 가서 한 번 더 할까? 카메라를 샀다.
원하면 바로 찍어서 즉석에서 볼 수 있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였다.

웨딩 앨범 말고는 볼 만 한 사진을 채워 둔 앨범 하나 없다는 게 제후의 이유였지만 빛나는 두근거림으로 자리해가는 아란의 모습을 잃어버리기는 너무 아까워서 그랬다.
제후는 자석이 달린 예쁜 팬시 제품을 사다가 냉장고에 사진을 붙여 놓기 시작했다.
막 일 어나서 눈을 부비는 모습, 샤워를 하고 나와 젖은 머리를 터는 모습이며 놀이동산에서 재영과 놀아주는 모습 등, 제후의 손에 서는 카메라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사진 찍는 걸 싫다고 손사래를 젓던 아란도 점차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다루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한 번은 술을 마시고 들어와 퉁퉁 부은 제후의 얼굴을 몰래 찍었다가 냉장고에 붙여놓고 잠 이 깬 그에게 보여주면서 깔깔대기도 했다.
길을 지나다 만난 귀여운 아이들이나 강아지들을 찍기도 했지만 그들 사진 속의 주인공은 거의 상대방이었다.
사랑할 운명으로 만나게 된 것처럼 뒤돌아보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두 사람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넌 언제부터 내 주위를 맴돌았을까.
내가 모르던 시절의 넌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떤 http://bwin.accs.kr 모습으로 나를 사랑했을까.
어쩌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제후는 아란을 더듬어 봤지만 어느 한 조각 기억 속에도 그녀의 이름은 남아 있지 않았다.
아란은 가슴에 안고 다니는 전공서적을 치우고 교복을 입혀놓으면 여고생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풋풋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화려한 옷과 세련된 화장으로 자신을 치장해 남자를 유혹할 줄도 몰랐고 마음에 드는 남자 에게 먼저 접근하는 여자들의 화끈함은 흉내 내지도 못했다.
결혼 전, 그런 여자들만을 찾아 부담 없이 즐겨왔던 제후 쪽에서 보면 눈에 띄지 않았던 것 도 당연했다.
설사 그녀를 알았다 하더라도 처녀를 망가뜨린 쫙벌녀 책임을 떠맡을 걸 염려해서 거절했을 것이다.
제후는 간혹 등 뒤를 맴도는 아란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 곧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말 못하고 외면하는 서글픈 눈빛을.
아란아 난 너를 확인해 보고 싶다.
내게 손 내민 나를 찾아올 용기를 내어주길 원한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단 훨씬 가까운 곳에 있는 나를 발견해주길 원한다.
너를 위해 심장을 송두리째 내어버린 내 사랑을 알아주길 원한다.
오늘 집에 못 들어온다구요? 벌써 술에 취했는지 전화기 너머 제후의 목소리는 분명하지 않았다.
http://naveryo.com
http://cye.daumkor.co.kr
http://alr.me
http://bwin.accs.kr
http://ajjj.isuim.com
http://kwsc.net
http://love.kbsyo.com
http://ccc1.me/naver/1169.html
http://ccc1.me/naver/3641.php
http://naveryo.com/naver/3222.html


